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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하치만군의 집에서 재워주면 좋겠는데―― 괜찮아?"

 

"하?"

 

 

급식을 다 먹은 후 찾아오는 점심시간.

 

수업 중간중간의 쉬는 시간에, 높은 빈도로 교실에서 모습을 감추는 하치만군은, 이번에도 나 홀로 숨바꼭질을 시작해버렸기 때문에 찾아 다니러 교내를 뛰어다닌다.

 

드디어 발견하고 나는 입을 열자마자 그것을 전했다.

 

어안이 벙벙해진 그는 체육관 뒤의 화단을 둘러싼 경계석에 자리 잡은 허리를 들어올렸다.

 

 

"뭐야 갑자기. 평소 같으면 며칠 전부터 예고했었잖아? 그게 어쩌다가 당일이 되서야 말을 꺼낸 거야?"

 

"민폐였나? 갑자기 그러니까. 곤란한 것도 알아. 하치만군 가정 사정도 있을 거고."

 

"아니, 민폐는 아니지만..... 다만 놀랐을 뿐이야."

 

"서프라이즈 라고."

 

"왜 하토코짱이 우리 집에서 자고 가는 게 서프라이즈? 아아 그건가. 코마치가 기뻐하니까 인가. 내 여동생은 오빠보다도 언니를 정말로 좋아하니까."

 

"아하하. 너도 코마치짱에게 사랑받고 있어. 내가 보증하지."

 

 

웃으면서 그의 불안을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정리했다.

 

코마치짱의 하치만군에 대한 말버릇은 칭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잘 들어보면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사이가 좋기 때문에 스스럼없이 욕도 할 수 있지.

 

코마치짱도 저렇게 삐뚤어져 있다.

 

남매라 그런지 닮았네.

 

 

"자고 가는 건 괜찮은데, 오늘밤은 엄마들이 직장에서 돌아오지 않아. 완전철야라는 녀석이지. 그런 식으로 휙휙 남자의 집에 묵으러 오다니. 하토코짱도 정조개념은 제대로 챙겨두는 게 좋아."

 

"그건 날 희롱하겠다는 뜻이야? 그렇게 생각하면 돼?"

 

"예를 들자면 말이다. 그걸 착각하지 말아줘. 나는 너를 소중히 하고 싶어."

 

"이거야 또 남자답네. 착각할 거 같아."

 

"어디에 착각할 요소가 있다는 거야?"

 

"내가 말하게 하지 말아줘."

 

 

진심으로 눈치 채지 못했나.

 

내 부끄러워하는 얼굴을 보고 추측해도 좋을 텐데.

 

소중히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의미로 변환 할 수 있다.

 

사랑한다고까지는 안가더라도, ‘정말 좋아’, 조금 랭크를 낮춰도 ‘좋아’.

 

소꿉친구니까 라고 이유를 붙여도 남아돌 만큼 호의를 느낄 수 있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도 하치만군은, 생각을 바꾸기는 커녕 부풀리고 있는 듯한――.

 

 

"그래서, 이야기를 계속하겠는데. 오늘은 무슨 이유로 자러오고 싶다는 얘길 꺼낸 거야? 말해봐. 별로 거절할 생각은 없으니까.

 

"응. 그게 말이지――."

 

 

어제부로 가정부 언니가 소속사를 결혼퇴직 했다.

 

이제는 나도 초등학교 3학년.

 

어른의 보살핌이 없어도 최소한의 가사정도는 할 수 있다.

 

내용물도 고3을 넘기고 있고.

 

그렇지만 과보호인 부모님은 나를 자택에서 혼자 집 보기 하는 것을 놔두지 않았다.

 

걱정 많은 어머니는 부모자식 모두가 사이좋게 지내주는 관계를 통해, 하치만군의 어머니에게 말을 맞추고 있다.

 

말하길, [딸을 넓은 집에서 외톨이로 두는 것이 걱정되니 하치만군과 함께 있게 하면 좋겠다.] 그러한 취지를 하치만군의 어머니에게 전하며, 자식이 모르는 곳에서 재워주기 기획이 생겨났다.

 

라고 출근직전의 어머니가 말해줬다.

 

[하치만군이라면 안심이네요. 함께 목욕이라도 하는 건?]이라고 어머니가 말했을 때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어머니의 정신상태도.

 

 

그러고 보니――.

 

소꿉친구에게 흔히 있는 어린 시절 함께 목욕한다는 유서 깊은 전통의식을 아직 치르지 않았다.

 

세간에 시달려 필요 없는 지식을 익힌 나는, 어떻게 된 거 같다.

 

그야, 하치만군은 친구다.

 

함께 입욕하고 싶다는 기분도 있기는 있지.

 

하지만 신체의 성별의 차이가, 그 욕구를 멈춰 세우고 있다.

 

아직까지 내가 정상적인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다.

 

하치만군에게 말해지지 않더라도 정조관념은 정상이다.

 

그렇다면 실수가 일어날 리도 없고......

 

같이 목욕해도 괜찮지 않나?

 

 

라고 하는 내 바람이나 어머니의 의도는 덮어두고 자러 가게 된 경위를 요약해서 설명해줬다.

 

납득한 모습의 그였지만 나를 보는 눈이 수상해보였다.

 

아니, 수상해 보이는 건 나이려나?

 

어린 나이부터 교제해온 하치만군과, 이 나이가 되어서 목욕을 함께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쪽이 이상하다.

 

 

"요는 집에 혼자두면 뒤숭숭하니까 재워달라고, 아주머니가 말씀하신 거구만?"

 

"그래그래. 참고로 오늘 뿐만이 아니라, 내일 이후로도 쭉 이라고 말씀 하셨다네."

 

"진짜냐?"

 

"진짜다만 불만이야?"

 

"아니 만족이야. 그래도 그거구만? 서프라이즈 라고 하는 건 사실이었네. 내 생일도 아닌데 선물을 줘서 고마워?"

 

"천만에. ‘선물은 나였습니다.‘ 라는 마무리네."

 

"어이, 진짜로 착각하니까 그만 둬.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너를 소중히 하고 싶어. 억지로 포옹하면 싫어하겠지, 너는?"

 

"역시나 깰지도."

 

"-지도 라니 너. 의미심장하게....."

 

 

아차, 지금 발언은 포옹을 강요받아도 싫어하지 않을 가능성을 시사한 건가.

 

나 역시 남자끼리 하는 포옹에는 저항이 있다.

 

예능인도 아니고 몸 가지고 웃길 수는 없지.

 

게다가 남자로서의 존엄을 잃어버릴 것 같고.

 

 

"게다가 말이다? 까고 말해서 너는 귀엽잖아? 내 소꿉친구는 치바현 제일의 귀여운 소꿉친구잖아?"

 

"그래서?"

 

"아니, 그러니까 말야. 끌어안고 싶다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귀여운 여자애라면."

 

"그 말투라면, 귀여우면 누구라도 좋은 거 같네? 바람둥이구나, 너도. 나라는 소꿉친구가 있으면서. 질투해버리네."

 

 

이 농담, 통할까? 나와의 교제도 길고 이해는 되는 걸까?

 

 

"으긋...... 농담 집안에서만 해라..... 날 괴롭히지 마."

 

"너 설마.... 진심인거야?"

 

 

'나는 거짓말인거 알고 있어' 라며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는 그. 

 

농담이라는 듯 도망치기 위해 괴로워 보이는 연기를 하며 자기 몸을 지키려 한다.

 

하치만군은 여자아이에게 강하게 나오지 못하니까 알기 쉬운 거짓말로 도망치려한다.

 

정신적 뿐만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도망치려고하는 하치만군의 손목을 붙잡아 도망을 저지했다.

 

 

"줄곧 곁에 있을 거라고 하지 않았어? 내게서 도망치려고 하다니..... 무슨 생각이야?"

 

"하토코짱 무섯! 얀데레로 캐릭터 시프트 체인지냐?"

 

"무례하네. 나는 병들지 않았어. 네 눈은 그거구나. 썩어있는 게 아닐까?"

 

"너야말로 실례라고?"

 

"그래도 나는 너의 그 눈도 좋아하지만 말야."

 

"어, 엉....... 고마.....워? 인가?"

 

 

도와준 건 잊지 않는다.

 

그의 상냥함에 응석부리기만 해서는 안 돼.

 

이쪽에서도 상냥하게 해주지 않으면 섬세한 마음을 가진 그는 상처를 받아 버리게 된다.

 

마음에 두고 있는 상대에 무심한 한마디로 울려진다고 생각하니 주저앉아버릴 것만 같다.

 

유키노짱은 히키가야를 일상적으로 매도했었겠지만 나는 다르다.

 

그가 마조가 아닌 한, 매도 따위 추호도 할 생각이 없으니까.

 

 

"바보."

 

"어이 지금 왜 바보라고 했냐."

 

"시험 삼아 말해본 것뿐이야."

 

 

무슨 시험일까?

 

자신의 신조에 시비를 걸어보는 나는 머리가 이상한 어린이.

 

 

"하하, 화났구나?"

 

"그야 화나지. 바보 한 마디 라도 말야, 너에게 들으면 충격이 큰 거야. 뭐, 동시에 근질근질한 것도 있어서 기분이 나빠진다는 것만은 아니지만....."

 

"그런 갑자기 성벽을 고백당해도..... 나도 욱신거리게 되어버리잖아 

 

"나도 장난이 너무 심했어. 그쪽은 농담으로 알아줘. 절실하게 말야."

 

 

가볍게 말을 부딪쳐 오는 정도로는 농담인지 진심인지 지켜봐야 할 모습의 그는, 후두부에 손을 대고 긁적긁적하는 행동을 보였다.

 

표정으로부터 만이 아니라 몸짓 하나에서도 동요가 보였다.

 

9살의 소년에게 있음직한 순수한 폭로였지만, 그런 특수한 취미를 허용할 정도로 나는 하치만군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해는 하고 있고 이러쿵저러쿵 하지는 않아.

 

다만 나까지 어울려줄 필요는 없는 취미이긴 하다.

 

그가 농담이길 바란다고 스스로 바란다면 나로서도 어깨의 짐이 내려가는 기분이다.

 

 

"일단 손을 놔줘. 랄까, 의외로 악력 강하고 아픕니다만?"

 

"아플 정도로 우정을 느껴주고 있는 건가? 기쁘네."

 

"지금의 하토코짱에게서 광기가 느껴져. 물론, 그것도 농담이겠지?"

 

"어떨까? 아아 그래도....."

 

"그래도?"

 

"역시 아무것도 아니야. 손도 놔줄 테니까."

 

"아니, 어이. 거꾸로 신경 쓰이잖냐?"

 

 

의미심장하게 말을 끊고 구속을 풀었다.

 

그에게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행동을 보여줬지만 정말로 의미는 없다.

 

놀리는데 흥이 올라버려서, 나는 장난을 쳐버렸다.

 

농담인가 진심인가.... 경계가 애매한 행위에 그는 두려워졌는지, 엉거주춤한 자세로 뒷걸음질 쳤다.

 

그래서 그런지.

 

그 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워서......

 

 

덥석.....!

 

의미도 없다고 자각하고 있으면서 그의 손목을 다시 잡았다.

 

물론 소녀의 가냘픔에 어울리지 않는 악력을 가지고서.

 

움찔하고 튀어 오른 하치만군의 어깨에, 비어있는 다른 쪽 손을 올려놓고 귓가에 얼굴을 가져다 댔다.

 

 

"말없이 사라지려고 하지 말아줘. 순간, 미움을 사버렸다고 생각 해버렸잖아?"

 

"무섯! 하토코짱, 무셔! 그렇지만 귀엽네, 참......"

 

"놀랐다. 이런 장면에서 솔직함을 보여주다니. 

 

"혹시, 치켜세워서 정신 팔리게 하고 도망갈 셈이야?"

 

"치켜세운 건 확실하지만 진심이라고?"

 

"달변가네. 정말로 그런 거 같으니까 용서해주겠지만."

 

"용서? 화났었던 거냐."

 

"아니, 하치만군이 두고 간다고 생각해서. 외로워진 것뿐이야."

 

 

마음이 불안하다.

 

이 세계에서 의지할 수 있는 상대는 하치만군 뿐.

 

이제 예전처럼 무지하지만은 않은 소년에게 나는 기대고 있다.

 

지탱해주고 있는 그의 강함에 나날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득이다.

 

미움 받고 싶지 않다는 기분도 매일 증가할 정도.

 

사실 하토코로서 재시작한 당초부터 정서불안증이다.

 

항상 비틀거리면 걸어 언제 쓰러질지 모른다.

 

그런 눈뜨고 보기 힘든 상황 속에서 그와 친구가 됐다.

 

함께 있어주겠다고 말한 그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냈다.

 

그래서 나도 명목 같은 건 버리고, 전력으로 어리광부려본다.

 

어린이에게 어리광부리는 어른이라는 것도 기묘한 광경이겠지만, 겉보기로 나를 어른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안고, 나는 하치만 군에게 의지했다.

 

 

"너무 의존하네. 간지러울 정도로 기쁘지만 말이다."

 

"솔직하네. 귀여운 여자아이에게 붙잡혀서 기쁨을 감추지 못하겠어?"

 

"싯꺼. 스스로 귀엽다고 말해대면 말이다. 가치가 줄어든다고?"

 

"여자아이의 외모에 가치를 붙이다니 실례구나. 하토코적으로 포인트 낮아."

 

"또 뭔지 모르겠는 포인트제를 끌어당겨 써대고."

 

"아아, 스스로도 의미를 모르겠다고 느끼고 있어." 

 

 

내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 그는 포기한 것 같다.

 

은근슬쩍 내 마음의 한기에 눈치 챘는지 따듯하게 해주려 한다.

 

그 배려심에 한없이 가열되어 반대로 땀을 흘릴 정도로 뜨거워 졌다.

 

걱정이 가득한 요즈음.

 

사람의 온기가 고픈 지금, 약간의 더움 정도는 참을 수 있다.

 

 

"응, 얼 것같이 추우니까 손을 잡아줄 수 있을까?"

 

"갑작스런 어리광쟁이는 그만둬. 조신한 척 하면 진짜 베기 여자아이로 보이잖아."

 

"뭐? 지금까지 나를 여자아이로서 보지 않았던 건가?"

 

 

아니, 그런 인식이기에 다행이었을 터.

 

내 원래 성은 남자.

 

하야마 하야토라는 이름의 고교생.

 

원래의 자신을 소홀히 하려고 하다니 나는 제정신이 아니다.

 

뭘 불복한다고 하는 걸까?

 

뭐가 불만이라, 뭐를 나는 바라고 있지?

 

돌연 스스로를 거절. 마음속으로부터 사고가 날아가 버린다.

 

그가 나를 [하토코짱]이라며 부르고 있지만, 저 멀리서 들리는 것 같아서 의식이 산만해져있다.

 

 

"어이, 또 멍하게..... 추우면 손 잡아줄 거고 목욕물도 따끈따끈하게 데워줄게."

 

"아, 아아....지금 멍하게 있었지. 미안."

 

"그랬지만.... 뭔가 하토코짱은 그렇게 때때로 울 거 같아지지. 이유는 말 못해주는 거야?"

 

 

걱정스레 그가 묻는다.

 

말해 줄 수 있을 리가 없는 남자였던 때의 기억――.

 

아니 기억이 아니다.

 

과거에 존재한 사실.

 

기억이라는 형태로 취급할 수는 없지.

 

그건 단순한 기억이라는 이름의 기록이 아니라 나 그 자체의 존재.

 

그것을 어설프게 다루면 나도 원래의 세계로의 귀환을 포기한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은 것.

 

 

하지만――.

 

여기에 하치만군과 하토코짱. 아버지와 어머니. 아저씨와 아주머니를 두고 가는 것에 대해서는 미련이 남아서 떨쳐버릴 수 없다는 듯한 생각도 든다.

 

제 2의 가족. 제 2의 고향이라고도 부르게 된 이 세계에는 너무나도 많이 내 흔적을 남겨버렸다.

 

나를 이 땅에 묶어두는 최악의 행복한 증거.

 

최악?

 

그것도 달라.

 

소중하고 버릴 수 없는 행복.

 

저쪽의 세계에서는 가질 수 없었던 것.

 

기념품으로 가져갈 수도 없는 소중하고, 끌어안고서라도 지키고 싶은 보물.

 

어쩔 수 없는 입장에 놓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뇌한다.

 

 

"그 뭐냐......"

 

 

하치만군은 천천히 목소리를 높였다.

 

그 음색에는 소년 특유의 높은 목소리로는 표현할 수 없는 남자아이의 분위기가 풍겨 나왔다.

 

뀽 하고, 설레어 버린 건 소녀의 비밀이야?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 정도다."

 

 

슬며시 그의 팔이 허리를 휘감았고.

 

내 몸은 하치만군의 가슴에 밀착해서――안겼다.

 

[끌어안고 싶다.]라고 말한 그와는 반대로 부정한 감정을 일체 배제한 포옹은 무척이나, 무척이나, 무척이나 따듯했다. 

 

피부의 온기만이 아니라 마음의 온기.

 

진부한 표현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성에차지 않았다.

 

 

"어때? 떨리는 건 멈춘 거냐"

 

 

목소리까지도 스며들어온다.

 

불안을 없애주고, 안정감을 줘서 달래준다.

 

이런 감각, 몰랐다.

 

지금까지의 인생에서는 조우할 수 없었던 경지.

 

그이기에 느낄 수 있는 마음.

 

 

"멈췄다. 응, 멈춘 거야...... 하치만군 말야. 가끔 놀랄 정도로 멋있을 때가 있어. 거기에 나는 끌리고 있다고 생각해. 정말, 너무 남자다워."

 

 

노골적으로 칭찬의 폭풍을 보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사와 호의가 순식간에 마음을 뒤덮어. 지금은 그저 토해내듯 눈물로 넘쳐흐른다.

 

눈에서 흘러나온 눈물도 슬픔과는 정반대인 기쁨.

 

그의 것이 된 것처럼 품에 안겨 행복한 한순간에 빠져들었다.

 

 

"네가 상대가 아니면 이런 일 해주지 않아. 잘난 척 할 수 있는 것도 너 뿐이다."

 

"그래줘. 너의 매력을 다른 누군가에게 알려질까 보냐. 가로채지기도 싫고...."

 

 

내 욕심이 흉하게 드러났다.

 

이런 국면에 드러난 본성.

 

경멸당할지도 모른다.

 

미움 받을지도 모른다.

 

마음은 남자인 주제에 소꿉친구인 남자애를 자신의 수중에 두고 싶다고 외치는 나 따위를 질색하게 되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나는 그를 좋아한다.

 

아주 좋아한다.

 

어디까지나 친구로서 라는 주석이 붙지만, 어디까지 그게 통할까.

 

세간에 있어서도.

 

그에게 있어서도.

 

그리고 자신에게도.

 

 

"독점욕이 강한 여자애구나. 그렇지만 뭐, 나도 그 정도로 붙잡아주는 신부가 아니면 만족하지 못할지도?"

 

 

그렇지만 그는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내지 않는 것이 아니라, 혐오라는 기분이 추호도 없는 듯.

 

방심했다고 느끼는 반면, 강하게 귀에 남아있는 한마디가 있다.

 

 

"신부?"

 

 

하치만군의 입에서 또르륵 흘러나온 말.

 

옛날부터 지금까지 그 약속을 깨지 않고 있었구나 싶다.

 

약속은 아직 지켜지고 있고 그에게도 파기할 의사는 없다.

 

그렇게 느꼈다.

 

 

"읏..... 아니 뭐, 그거다. 비유로 말한 거지 그다지 여기서 프로포즈 한 것도 아냐. 꼬맹이 때랑은 사정이 다르지. 게다가 이 포옹도 드라마 표절이다."

 

 

갑자기 평소의 그가 납셨다.

 

모처럼의 분위기가 박살.

 

하지만 싫지 않아.

 

이런 그의 성격도.

 

겁쟁이에 꼴사나운 모습도.

 

내게는 이상의 남자아이로 비친다.

 

아아, 나도 기어코 어떻게 된 것 같다.

 

정신적으로는 동성인데 그를 이성으로 인식하려고 하니까.

 

 

"이제 망했어. 바보....."

 

"또 바보라고 했겠다? 바보라고 하는 쪽이 바보라고."

 

"하치만군에게라면 바보가 되어도 좋아."

 

 

그가 솔직해졌다면 이번에는 내 차례.

 

예를 다해야지.

 

대등한 존재로서 언제까지고 함께 서고 싶으니까.

 

 

"오늘 밤은...... 상냥하게 해줘?"

 

"어, 엉...... 왠지 지금의 하토코짱. 어마어마하게 귀여운데...."

 

 

또 귀엽다고 말해줬어.

 

그는 기억하고 있다.

 

내가 무슨 말을 들으면 기쁨을 느끼는지를.

 

귀엽다고 들었다고 기뻐하는 나도 소녀사고 일직선.

 

육체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마음도 여체화를 이루려고 한다.

 

급격한 변화를 좋아하는 자신을 부정해야하는가 하고 판단을 못해 헤맨다.

 

그러나 이제――.

 

스스로에게 거짓말은 관철할 수 없다.

 

나는 남자라고 부를 정도로 더 이상.....면모라고는 남지 않았다.

 

티끌만한 조각만이 남아있을 뿐.

 

어이없이 져버린 하야토로서의 마음은 수를 헤아릴 수 없다.

 

그에 반하여 얻어낸 하토코로서의 마음도 수를 헤아릴 수 없다.

 

수중에 있는 마음은, 마음속에 숨겨둔 마음은 이제는 하토코가 이기고 있을 정도다.

 

 

이제 괜찮지 않을까?

 

하야토에게 수고하셨습니다 라고 전하고, 하토코에게 어서오세요라고 인사를 해도――.

 

머리 나빠 보이는 말투지만 속마음을 내뱉는다면, 그 정도의 직설적임이 어울린다.

 

겉보기도 어린이.

 

누구에게도 이의는 없겠지.

 

어른스러운 초등학생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결국은 어린이.

 

아이라면 제멋대로 해도 좋다.

 

나는 마음대로 하치만군을 친구로서 좋아할 거야.

 

하야토라는 필터를 통해서가 아닌 하토코로서 직접 좋아해 주겠어.

 

 

흡사 나는 쉬운 여자(チョロイン).

 

라노벨에 나온다면 이야기 시작부터 주인공에의 호감도 MAX인 소꿉친구.

 

이차원의 세계에 자신의 경우를 겹쳐보는 나는 아픈 여자겠지?

 

그렇지만 그도 마찬가지로, 어쩌면 그 이상으로 아픈 남자아이.

 

아픈 사람끼리 어울린다.

 

닮은 인간은 반발하는 듯 하지만 사실은 어딘가 이끌려서 만난다.

 

유유상종 한다고, 우리들은 친구가 되었다.

 

그렇다면 나와 하치만군은 최고의 친구.

 

최고의 절친.

 

최고의 소꿉친구다.

 

 

아직 부풀지도 않은 평탄한 가슴을 펴고 앞을 본다.

 

 

"하치만군..... 약속은 지켜 줘?"

 

"어 그러니까, 어느 약속에 대한 거?"

 

"둔감한 척 하기 없기야. 내게는 통하지 않으니까. 해봤자 헛수고로 그칠 거야."

 

"응ー? 아니, 진심으로 모르겠는데."

 

"어라? 정말로.........? 거짓말........ 으으응(으↗으↘응→), 하지만 그라면......"

 

 

중요한 국면에서 그는 타고난 라노벨 주인공 기질을 발휘한다......

 

내 일생일대의 결심은 헛발질로 끝났다.

 

내 마음을 돌려줘.

 

이자도 포함해서 철저하게.

 

비싸게 치인다는 것을 그가 각오 해줬으면 한다.

 

내 마음은 무거울 테니까, 들어주는 것도 큰일이다.

 

거기는 뭐..... 남자다움을 폼 잡듯이 보여주고 책임을 다해준다면 만족.

 

의무를 다하는 것이 어른으로서도 남자로서도 성장의 증거.

 

내가 그 증인이 되는 것도 지나치지 않지.

 

 

"뭘 중얼중얼 대고...... 부탁이니까 나도 알 수 있게 설명 해주라."

 

"아니, 내가 말해줄 수는 없지. 그걸 아는 것은 너 자신의 힘으로 해주길 바래. 게다가.... 나도 좀 부끄러우니까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거 같아."

 

"이상한 녀석이구만?"

 

"너에게 그런 소리 듣고 싶지 않은걸? 하지만, 누구 입에서도 나올만한 말은 아닌 거 같네."

 

"좋아, 알겠어. 나는 모른다는 것을 알겠어. 자세한 설명은 밤에라도 해라."

 

"좋아, 그걸로. 그리고―― 자러가는 것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대해줘서 고마워. 부족한 몸이지만 잘 부탁해."

 

"엉. 앞으로도 쭉 우리 집에서 신세를 지는 거야. 사양이라든가 하지 말고 자기 집처럼 편하게 지내도 괜찮아. 뒷바라지도 해줄 테니까."

 

 

아무래도 그 내게 연상인척 하고 싶은 듯.

 

오빠인 척 하고 있다.

 

이전에는 남동생 취급을 용인 해줬는데 입장이 역전해있었다.

 

하극상 당해도 불쾌감이 생기지 않는 것은 내가 그를 인정하고 있어서.

 

그에게는 더 이상 패배한 것과 마찬가지.

 

의지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다.

 

강한 남자에게 끌리는 것은 여자아이의 본능.

 

물리적, 육체적인 강함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강함에도 그 룰은 적용되고 있다고 내가 증명했다.

 

그런 그와 만나게 된 운명에 감사를 드리고 싶다.

 

 

"내 몸도 마음도 지켜줄 거야?"

 

"에아? 아, 아아. 뭐 그렇지. 시중도, 뒷바라지도 해주겠다고 말한 이상 뭐가 됐든 그리 해줄 거지만 말이야?"

 

"말한 거지? 그럼 이제 나는 너 이외의 남자아이 에게는 심신 모두 보는 것도 만지는 것도 허락하지 않아. 나는 너만 것이야. 그런 거지?"

 

"좀, 기다려? 나는 거기까지 독점욕이 강하지 않다고. 아니 뭐 네가 다른 남자랑 얘기하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아. 언짢고 진정되지 않지. 아아.... 그걸로 된 걸까나? 하토코짱이 나만의 친구가 되어준다면....."

 

 

그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고 있는 걸까?

 

그 말은 실질적으로, 하야마 하토코라는 여자애를 자신의 여자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하치만군의 해석으로는 분명 [소꿉친구인 여자아이의 절친은 자신 하나로 충분] 이라든가 그런 것.

 

무자각으로 나를 소유물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제 3자에 의한 입회는 없어도 내가 그렇게 생각해버렸으니까 기정사실은 이루어져있다.

 

그도..... 꽤나 육식계다.

 

연애감정이 있는지도 확실하지는 않은 어린아이면서――.

 

 

 

 

 

 

 

* * *

 

 

 

 

 

그 날의 방과 후.

 

전날 미리 준비해둔 갈아입을 옷이나 양치질 세트.

 

애용하고 있는 샴푸 등을 넣은 가방을 가지고 옆집의 소꿉친구의 집으로 불려갔다.

 

귀가하자마자, 코마치짱에게 재촉당해서 준비는 만땅이었을 터인데 매우 당황하게 되어버렸다.

 

코마치짱, 그렇게 내가 방문하는 걸 손꼽아 기다려준 걸까나?

 

 

실은 나도 해사해질 정도로 기대하고 있었다.

 

칠칠맞지 못하다.

 

지금의 나는 하치만군에게 칠칠치 못한 여자애다.

 

얼굴을 보이면 절대로 웃어버릴지도.

 

그래서 고개를 보이지 않게 하며 히키가야 가의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는다.

 

그러나 발밑의 주의가 부재였던 탓일까, 무심코 비틀거려 버린다.

 

손을 바닥으로 향해 충격을 줄이려고 순간적인 판단을 내리려고 했지만, 한 손이 들고 있는 가방으로 막혀있어서 낙법을 취할 수가 없다.

 

넘어져버렷!

 

그렇게 위험을 예감하고 눈을 감았다――。 지만 충격도 아픔도 오지 않는다.

 

이 몸에 느껴지는 것은 딱딱하지만 부드러운 감촉.

 

하치만군의 팔이 내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촐랑이네. 오늘은 몇 번이나 답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는구만?"

 

"아, ..........고마워. 네게는 감사가 끊이질 않네."

 

"허풍이 심하네. 연기하는 거 같아. 하토코짱."

 

 

진절머리가 난다는 모습으로 그는 손을 휙휙하고 흔들어 감사를 거절한다.

 

솔직한 점도 외고집인 점도 있는 그는 인간답다.

 

아니, 하치만군 답다.

 

 

"그야 하치만군이 순정만화에 나오는 왕자님 같으니까. 무심코 그럴 기분이 되어버린 거야."

 

"내가 왕자라니 시력 이상하다고? 학교의 왕자라든가 그런 캐릭터, 나한테는 어울리지 않다고."

 

"주위의 평가와 가까운 사람의 평가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아. 그리고, 고마워."

 

"몇 번 감사하면 다야? 젠장, 웃는 얼굴로 말하지 마. 부끄럽잖냐....."

 

 

말이 막히니까 했던 말을 또 했다.

 

그건 내 버릇일지도 모른다.

 

하나의 마음이 끊이질 않고 몸 안에서 증식하고 있을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지만.

 

예를 들어 그에게의 호의라든가?

 

특효약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인체실험의 단계에도 들어와 있지 않으니까.

 

게다가.....

 

이 병을 완치시킬 생각도 없다

 

 

괜찮아, 이미 늦었을 정도로 중증이 되어버려도.

 

상사병과는 또 다른 병이겠지만 앞서 합병증상이 나타난다.

 

병발해버려도 나를 용인해준다.

 

악화일로를 더듬으며 옆에 그가 있어준다면 행복하다.

 

하하, 떨쳐버리고 나니, 이렇게 하치만군을 향한 호의를 양산시켜 버리는 구나?

 

 

스스로 기획한 하치만군에 대한 마음을 자기 취향대로 양산하고 자기 앞으로 출하.

 

재미있을 정도로 하치만군에 대한 의존을 강화해간다.

 

그러나 그것을 좋은 일이라고 받아들여, 오히려 권장하는 것이 나.

 

나의 자신다움이란 하치만군에게 섭섭잖은 호의를 보내는 것.

 

그가 받아들여준다면 좋겠지만.

 

 

거듭 다짐해두자면 내가 그에게 품은 감정은 연애 감정이 아니라 절친으로서, 소꿉친구로서, 가족으로서, 이성으로서 유일무이한 소중한 사람이니까 사랑하고 싶다.

 

분류하기 힘들다, 애초에 카테고리가 있는지도 불분명한 감정이다.

 

왠지 모르게 그 정체를 알고 있는 것 같은 기분도 들지만 초조해 하는 건 금물.

 

더욱이 하치만군과는 인생을 공유하면서 살아갈 거다.

 

나는 하치만군의 옆을 걷고, 하치만군은 내 옆을 걷는다.

 

어느 쪽을 따라가는 것도 아니고 쭈욱 함께.

 

 

하지만 만약에 그 쪽에서 떠나가려고 한다면――.

 

싫어하더라도 땅 끝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하치만군을 쫒아갈 거다.

 

그게 세간에서 일반적으로 가리키는 소꿉친구라는 것이겠지?

 

얀데레와 같은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광기가 아니다.

 

지나친 순수함에서 오는 애정표현.

 

하늘과 땅 만큼의 의미의 차이가 있다.

 

나는 물론 후자다.

 

 

하치만군은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등대처럼 나를 이끌어주는 남자아이.

 

내가 헤매어도, 그와 떨어지더라도, 그가 도망치더라도――.

 

그의 빛남을 목표로 하면 이정표를 얻은 것과 다름없다.

 

이세상의 어디에도 그가 도망칠 곳은 없어.

 

아니.

 

내게서 도망칠 이유도 없으니까 그 가능성을 시뮬레이션 하는 것은 불필요.

 

나도 지쳐있는 것 같다.

 

도망친다니, 당연히 있을 수 없는 생각에 빠져있다.

 

한 순간 한 순간을 소중히 하는 나는 그에게 안겨있는 몸을 좀 더 그에게 밀착시켰다.

 

 

"어, 어이? 부드럽네, 하토코짱의 신체는. 떨어져주면 좋겠지만 떨어질 필요는 없다고. 난, 남자고 나쁜 생각은 하지 않아. 게다가――역시 여자애....인가? 진심, 부드러워. 가슴 크기는 그닥 이지만."

 

"여자아이에게 좀 실례이지 않을까? 나는 아직 9살이고, 네 취향일거 같은 야한 체형을 하고 있지 않아. 하지만 장래는 유망해. 엄마의 스타일, 네 관점에서도 훌륭한 거겠지?

 

 

말이 길어질 만큼 실망시키는 것이 두려워져버렸다.

 

내버려진다고 해도 내 쪽에서 그를 쫒아갈 셈이지만, 가능하면 계속 좋아해줬으면 한다.

 

그걸 위해서라면 약간의 수치심을 버려도 좋다.

 

모델 스타일의 어머니를 주제로 내놓고 설득을 시도해본다.

 

 

"잘못했다니까. 삐지지 마..... 너의 매력은 앞으로도 증가하겠지만, 지금은 미소가 최고다. 그러니까 내 앞에서는 미소를 끊이지 마."

 

"그, 그래? 하치만군이 말하는 거니까 맞겠지. 응. 나는 네 앞에서만 미소를 지을 거야."

 

"아, 그다지 나 속박을 요구하는 게 아니니까."

 

"하하, 뭐야 그게 웃겨."

 

"아니, 안 웃기니까."

 

 

그도 무리한 요구를 한다.

 

내가 그 외의 다른 사람 앞에서 웃는 얼굴이 되어도 상관없다고?

 

농담에도 정도가 있다.

 

코마치짱이나 아버지들 앞에서라면 납득은 간다.

 

하지만 나를 독점해주지 않는다니 어찌된 일이지?

 

정말이지 납득이 안가네.

 

분노로 머리에 피가 몰렸기 때문에 그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아파앗! 적당히 아프니까 멈추라곳!"

 

"몰라....나를 화나게 하면 이렇게 되니까 신경 써야 할 거야. 특히 내게서 도망치려고 할 때는――알겠지?"

 

"아니, 모르겠지만 도망치면 안 된다는 것만은 왠지 모르겠지만 이해했다."

 

"응, 현명한 판단이야. 역시 하치만군은 내가 옆에 있어주지 않으면 말이지? 그렇지 않으면 타락해버릴 테니까 말이야."

 

 

잡은 옆구리 살에서 손을 놓으며 몸도 거리를 뒀다.

 

사실은 조금 더 이렇게 있고 싶었지만 저녁 준비를 해야 한다.

 

오늘밤은 내가 저녁밥을 대접 해주겠다고 돌아오는 길에 약속했으니까.

 

하치만군의 위장을 잡을 찬스를 이 손으로 움켜잡은 거다.

 

수줍은 소꿉친구의 행동은 빠른 거니까.

 

 

"타락이라니..... 확실히 내 성격은 뒤틀려있지만 심하다고?

 

"그러네. 친구는 없지만 눈은 탁하지 않아. 말 걸리면 나름대로 말할 수 있지만, 급우에게 조차 서먹서먹함을 떨쳐내지 못하는 너니까. 내 도움이 없어도 제대로 잘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 조력이 있으면, 좀 더 훌륭한 남자가 될 수 있다고? 그야 말로 학교의 왕자님에게도 필적하는 클래스의 사나이가."

 

"칭찬하는 거? 비꼬는 거? 스펙은 높은 나지만 눈에 띄고 싶지는 않네."

 

"걱정 마. 너의 자유는 내가 묶고 있고, 안전도 보장할게. 머리 이상한 여자는 접근시키지 않을 거고 지켜줄게. 그러니까 너도 나를 지켜줘?"

 

"나는 하토코짱이 머리가 이상한 여자애지 싶은데..... 아니, 말실수다."

 

"잘도 말해줬겠다? 너는 그거야? 바보지?"

 

 

심한 건 하치만군 쪽이다.

 

모처럼 여자애로서의 자신.

 

하토코로서의 삶을 나아갈 것을 결의한 나를 소홀히 대하다니.

 

도덕적 폭력이라는 녀석?

 

하지만 내게도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거겠지.

 

서로가 단점을 찾아서 고쳐가는 것도 소꿉친구의 이인삼각.

 

생소하지만 새로운 경기로 등록해보는 것도 좋을지도 모르겠네.

 

 

"바보라도 좋으니까. 밥이다. 밥을 만들어줘. 배가 고파."

 

"네네. 오늘은 하치만군이 좋아하는 햄버그라고? 밑 준비는 집에서 해온 것을 쓸 거니까, 그렇게 시간은 걸리지 않을 테니까."

 

"사이제 햄버그랑 같을 정도로 좋아한다고. 하토코짱이 만드는 햄버그는."

 

 

거기는 내 수제 햄버그쪽이 좋아라고 해주길 바랬다.

 

그래도 욕심 부리면 안 돼.

 

실력으로 사이제를 이기면 자연스레 하치만군도 인정해줄 터.

 

믹스그릴만 주문하는 그를 돌아보게 만들어 보이겠어.

 

그게 내 최초의 시합.

 

 

"조미료는 애정이라구?"

 

"약삭빠르네.... 귀여우니까 봐줄 거지만."

 

"너의 그 솔직함도 약삭빠르다고? 이로하가 부러워하겠지. 지금의 하치만군을 보면."

 

"누구야, 이로하라는 애?"

 

"아무것도 아니야. 그것보다...... 오늘밤은 같이 목욕하러 들어가자?"

 

"하......? 지금 뭐라고?"

 

"그쪽도 아무것도 아니얏."

 

 

추궁하는 그를 현관에 내버려두고 세면장으로 향한다.

 

등 뒤로 [진짜냐..... 하토코짱의 피부는 어떤 느낌일까?] 라고 의문을 품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 수수께끼도 오늘밤, 해명될 거니까 지금 대답할 의무는 없다.

 

알고 싶다면 그의 의지로 내 몸을 조사하게 해야지――。

 

 

 

에헤헤....... 오늘은 하치만군이랑 목욕을 같이 한닷!

Posted by 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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